안녕하세요. 오에 겐자부로 단편선을 읽었습니다. 그는 1994년 노벨상을 받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노벨상 강연에서 한 '애매한 일본의 나'라는 제목의 연설과, 천황이 수여하는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거부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이 단편선은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삶은 그의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단편선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초기 단편에서 소설가로의 그의 출발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초기 단편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초기 단편은 경쾌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남기는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초기 단편을 꼽아보자면 기묘한 아르바이트, 사육, 인간 양, 돌연한 벙어리, 세븐틴, 공중 괴물 아구이입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는 개 150마리를 도살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국민학교 3학년 어린아이였을 때 일본은 한창 태평양 전쟁 중이었는데 물자 동원령의 하나로 집에서 기르던 개를 학교로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군인의 외투를 만들기 위해 개가죽이 필요했나 봅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데려온 개들이 바글바글했고 운동장 옆 공터에 비닐로 칸막이를 만들어 놓고 개백정이 개들을 도살했다고 합니다. 그 전쟁의 경험이 전후 대학생이 된 그에게 기묘한 아르바이트라는 단편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초기단편에서는 전쟁의 냄새가 많이 납니다.
사육은 태평양 전쟁 중 일본의 시골마을 사람들이 추락한 흑인 미군 조종사를 포로로 잡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마을에 사는 어린아이입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시코쿠 섬의 숲 속 시골마을이었다고 하는데 그 장소에 대한 경험을 잘 살린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전시 인간 군상을 만나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한 인상이 남은 이야기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단편으로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습니다.
인간 양은 전쟁이 끝난 후 어느 버스 안에서 미군들이 난동을 부리는 이야기입니다. 돌연한 벙어리도 전쟁이 끝난 후 한 시골마을에 들렀다 지나가는 미군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로 강한 인상을 받은 이야기가 돌연한 벙어리입니다. 역시 어린아이가 주인공인데 결말 부분에서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븐틴은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일본 사회의 혈기왕성하지만 미숙한 10대의 이야기입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정치적인 성향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17살을 맞이한 고등학생이 우익 청년이 되는 과정을 묘사했습니다. 세븐틴 2부가 나오고 일본 우익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븐틴 2부를 읽어보고 싶은데 구할 길을 모르겠습니다.
공중 괴물 아구이는 한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작곡가 D의 시중을 들어주는 이야기입니다. 작곡가 D는 아구이라는 괴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영을 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두개골에 이상이 있는 아들이 얻게 됩니다. 그 경험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듭니다. 그 후로 소설가로서의 삶도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그의 초기 단편은 끝납니다.
초기 단편이 픽션을 전제로 소설의 형식을 유지했다면 중기 단편부터는 자전적 요소가 강한 에세이 형식의 소설로 바뀌게 됩니다. 읽다 보면 이게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립니다. 아마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소설적 허구를 조금씩 가미한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중기 단편부터는 그의 삶과 문학 세계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허들이 존재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 허들을 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그의 삶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초기 단편이 제일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여기부터는 어느 한 단편을 꼽지 않고 기억에 남는 부분을 끄적여 봅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제 상상을 덧붙여 책과 전혀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고민이란 장애를 가진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짐작하기 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겠지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렸을 때 시골마을에서 살 때 잠수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동굴 같은 곳에 혼자 갔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들려줍니다. 머리가 깨진 채 살아 나오긴 했지만 어머니에게 언제든 삶을 내던질 수 있는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깨진 자신의 머리와 머리에 혹이 난 채 태어난 자신의 아들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는 아들과의 공생을 시작합니다. 작가답게 그는 문학연구를 하며 앞으로 전진합니다. 멜컴 라우리, 블레이크, 단테, 이토 시즈오의 작품을 연구하며 자신과 아들의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저는 위 작가들에 대해 잘 몰라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오에 겐자부로의 입을 빌려서 밖에 듣지 못했습니다만. 도쿄대 불문과를 나와서 문학작품과 떨어질 수 없는 소설가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는 세상을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 혹은 진보주의에 관심을 가진 작가였습니다. 핵을 반대하는 모임과 평화 관련 모임을 많이 가졌다고 합니다. 하마에게 물리다 시리즈는 1972년 일어났던 아사마 산장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자전적인 에세이 형식으로 마담 하마용사와 하마용사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좌파적군이 일으킨 납치 및 살인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좌익세력은 더 입지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그 사건의 생존자인 하마용사와 관련된 기사를 통해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오에 겐자부로 단편선을 통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문학을 통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흐릿하게 나마 접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의 문학에는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전쟁. 둘째, 장애를 가진 아들. 셋째, 진보주의입니다. 이 3가지가 작가로서의 인간으로서의 오에 겐자부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3가지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를 더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작품을 계속 읽어야겠지요. 물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장편소설도 읽어볼 계획입니다. 그런데 읽고 싶은 다른 책들도 많아서 계획대로 될지 자신은 없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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