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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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 무라카미 하루키

by 튼튼시니어 2022. 8. 20.

안녕하세요.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부담 없는 책을 읽어봤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입니다. 책 제목이 꽤 길지요. 그는 말합니다.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입니다. 일본 문학에 관심이 없더라도 하루키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는 당연하게도 소설을 잘 쓰지만 에세이 또한 잘 씁니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과 아일랜드를 다녀온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두 곳의 공통점은 위스키로 유명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책 중간중간에 그의 아내가 찍은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아일레이 섬은 스코틀랜드 서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아일랜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섬은 싱글 몰트 위스키로 유명합니다. 위스키를 제일 먼저 만든 곳은 아일레이 섬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아일랜드에 가깝기 때문에 위스키 제조법이 발달했다고 저자는 짐작합니다. 그리고 보리, 맛있는 물, 이탄이라는 좋은 위스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 또한 잘 갖추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일레이 섬에서 보모어 증류소와 라프로익 증류소를 견학합니다. 보모어는 옛날 방식의 제조법을 고수하고 있고, 라프로익은 근대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키 다운 문체로 각각의 증류소에 다녀온 경험을 적었는데 중간중간에 재밌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생굴에 싱글 몰트 위스키를 끼얹어 먹고 난 후 그의 말에 잔잔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인생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아이리시 위스키를 마십니다. 위스키와 물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좋은 위스키에는 얼음을 넣어 마시지 않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은 대체로 위스키와 물을 반반씩 섞어 마신다고 합니다. 그래야 위스키가 제맛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절반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나머지 절반은 물을 섞어 마신다고 합니다. 맛있는 걸 물을 섞어 묽게 마시는 게 아까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로스크레아의 펍에서 만난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키는 카운터에 앉아 부시밀스를 마시고 있었는데 일흔쯤 돼 보이는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펍에 들어왔습니다. 항상 그래왔듯이 노인이 카운터에 동전을 올려놓자 바텐더는 튤러모어 듀를 한 잔 따라주었습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를 마셨습니다. 하루키는 그 순간 그 노인은 완전히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몸도 마음도 이토록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인은 위스키를 한 모금씩 마시고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은 술잔을 비우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갔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인이 떠난 공간에 잠시 동안 부조리한 틈새 같은 것이 남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키의 마음에 뭔가 남은 것이지요. 그날은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다음날이었다고 하니 1997년 6월 30일이라고 짐작됩니다. 
 

 
책의 분량이 짧고 중간에 사진도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집에 있는 위스키를 하루키 스타일로 마셔봤습니다. 집에 있는 위스키는 비록 스카치 위스키이지만 말입니다. 책에 나온 싱글 몰트나 아이리시 위스키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여행하게 되면 이 책을 다시 떠올릴 것이 분명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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